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서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한국현대문학 전공 문학박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 한국비교문학회, 한국현대문학회, 한국시학회 회장, 한국문학번역원 이사장 역임. 현재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저서로 《한국근대시사》 《한국현대시사》 《해방기 시문학사》 《현대시 원론》 등이 있음.
몇 편의 예외가 없는 바 아니지만 여기에 실린 글들은 내가 최근 몇 해 사이에 쓴 것들이다. 최근작들 가운데도 제재나 내용이 본격 담론에 가까운 것은 제외하고 비교적 경량급에 속하는 글들이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책에 담긴 것은 서사여적(書舍餘滴) 정도에 그치는 글들인 셈이다.
전편을 몇 개의 묶음으로 나누어본 것에는 별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처음 책을 엮으려고 원고들을 읽어보니 여러 글들을 아우를 공통분모 같은 것이 없어 형형색색(形形色色)으로 느껴졌다. 이것은 어느 의미에서 세수도 하지 않고 격식이 있는 의식의 자리에 나가는 꼴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 나머지 네댓 편씩의 글들을 한 장씩으로 묶어서 4부작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제1부에 수록된 것은 이제 내 평생의 고질이 된 우리 문학 읽기의 갈피에서 파생된 내 나름의 의견서 같은 것이다. 글들 사이사이에 낱말들에 대한 사전적 풀이가 끼어들고 또한 김소월이나 두보(杜甫), 한용운의 이름이 섞여든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어렸을 적에 나는 섬약 체질이어서 몸이 튼튼하지 못했다. 조금 자란 다음에도 한 시대나 사회를 주도해나갈 만한 기백이나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 내가 비바람과 눈보라까지 겹친 세월 속에서 크게 좌절하지 않고 오늘에 이른 것은 누구의 은덕이었던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언제나 내 주변서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살뜰한 손길도 뻗쳐준 피붙이와 이웃, 이제는 유명을 달리하게 된 몇몇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부에는 그 가운데도 유별나게 그리운 몇 분을 그려본 회상기들을 실어보았다.
3부를 이룬 것은 이 얼마 동안 내가 써온 일기류에서 발췌된 글들이다. 머리에 서리가 내리게 된 다음 나는 뇌파 작용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기억력이 감퇴하기 시작했다. 그 보완책으로 생각된 것이 낙서에 가까운 비망기를 날짜별로 적어본 일이다. 그것이 강산이 변하는 세월을 거치게 되면서 몇 권의 노트가 되었다. 그 가운데 아주 폐기처분하기에는 아쉬운 것들을 뽑아 실은 것이 제3부다.
4부 또한 3부와 거의 비슷한 성격의 글들을 담았다. 굳이 다른 점을 말하라면 이 부분의 글들에 한시나 한문학에 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점일 것이다. 지난 세기의 막바지 무렵부터 나는 내가 전공하는 한국 현대문학의 이해와 체계화가 이제까지와 같이 서구 추수주의 일변도의 형태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리라고 느꼈다. 우리 문학의 건전한 해석, 평가를 위해서는 서구의 근대 비평 방법과 함께 우리 문화 전통에 대한 인식도 병행시킬 필요가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와 함께 나는 그 지렛대 구실을 하는 힘의 한 가닥을 한시와 한문학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으로도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시나 방송극을 제재로 한 글이나 「해묵은 부대, 새로운 포도주」는 소박한 대로 그런 내 생각을 담아본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