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추운 날이었다. 성당 앞 언덕길은 살얼음이 끼어 있어서 엉금엉금 걸었다. 그 얼음판 위로 때에 전 비둘기들이 우르르 몰려 다녔다. 너무 추워서 속눈썹이 쩍쩍 붙었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핏빛 문을 한 뼘 가량 빼꼼히 잡아 당겨 어깨를 비틀며 들어섰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성수대는 메말라 있었다. 대신 궁륭 높이 차오른 고요로 인당을 씻고 눈 뜬 채 묵묵히 기도를 시작했다. 우선 로사리오를 바치고 돌아가신 부모님도 불러보았다. 제대 너머로 보이는 사도들의 봄꽃 같은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조금 흘렀다. 그러고는 곧 성당을 나섰다. 청계천 다리 위에 웅크린 채 굶고 있는 비둘기 떼 옆을 지나 어둑해진 겨울 거리를 터덜터덜 걸었다. 낙원 상가를 거쳐 인사동으로 갔다. 내걸린 서화가 보이면 불쑥 화랑으로 들어가 훑어보고는 나왔다. 뭔가 허전해서 스스로 나 같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공평동 하늘 위를 날아가는 까마귀를 보았다. 모두 다섯 마리였다. 그건 나의 환각이지 싶다. 그 도심 한복판에 어떤 먹이가 있다고 까마귀가 다섯 마리나 날아갈까? 그러나 너무도 생생한 모습이었다. 광호에게도 나에게도 그렇게 삶은 신비와 상징을 남긴 채 미완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