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언론인, 예술 비평가이다. ‘벨 에포크’ 시대 소설 장르의 혁신을 이끈 문단의 전위였으며, 권력 비판과 사회 참여에 앞장선 비판적 지식인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1848년 노르망디 지방에서 태어난 미르보는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징집되어 전쟁의 쓰라린 경험을 겪었다. 제대 후 정치인의 비서로 일하다, 1872년 파리에서 저널리스트로 입문해 여러 언론사에서 일했다. 1883년 풍자 잡지《레 그리마스Les Grimaces》를 창간해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권력층과 공화국의 위선을 폭로했다. 1886년 장편소설《수난Le Calvaire》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한 후《쥘 신부L’Abbe Jules》,《세바스티앵 로크Sebastien Roch》등의 작품을 출간했다. 전쟁과 종교 등에 대한 금기를 위반하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이 작품들은 열렬한 지지와 격렬한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1894년부터 전개된 드레퓌스 사건 당시에 미르보는 에밀 졸라를 옹호하고 언론 활동을 통해 민족주의자와 교권주의자, 반유대주의자들을 공격하는 등 진실을 지키고자 분투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으로 앞장서 행동하는 그에게 에밀 졸라는 “정의의 사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후《고문의 뜰Le Jardin des supplices》,《어느 하녀의 일기Le Journal d’une femme de chambre》등의 소설과《사업은 사업이다Les affaires sont les affaires》,《기숙사Le Foyer》등의 희곡을 발표했다.
미르보는 예술 비평가로도 활동하면서 로댕, 모네, 고흐, 클로델 등의 예술가들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자유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로서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와 국가의 폭력에 맞서 싸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절망하던 평화주의자 미르보는 예순아홉 번째 생일을 맞은 1917년 2월 16일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