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평생이라지만, 직업 교원으로 지내다가 정년을 맞았다.
묵은 노트에 일기 비슷하게 메모한 것이 있었다.
아이들이 그제나 이제나 컴맹인 아비를 위해 타자를 해주었다.
비매품으로 책자를 엮어 정년퇴직 모임에 와주신 분들께 답례품으로 드린 일이 있다. 행촌단문(杏邨短文) 『淸溪기슭 어슬렁』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시 그동안의 메모들을 모아 자료집을 만들어왔다. 그것을 책자로 만들어 나눠 보든지, 출판할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정식으로 시집을 낸다는 것은 여간 두렵고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철학 교수로서도 분에 넘치고 더 바랄 것이 없다.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거늘 무엇을 더 원하랴. 하기야 문사철(文史哲)을 함께 들여다볼 처지이기는 하였지만 한도가 있는 것이요, 시문(詩文)을 애호하고 시인(詩人)을 존숭하기는 하였지만, 아무나 그 이름을 붙일 수야 있겠는가?
서문을 써주신 윤석산 시백님, 오랜 세월 한국의 시맥(詩脈)을 지켜 오신 현대시학사의 전기화 대표님, 자초지종 산파역을 다하고 해설까지 써주신 김종록 작가님, 곁을 떠나지 않고 아비를 돕는 선경 박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