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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수1939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중학생 때 동양화가 유천 김화경 문하에서 동양화를 배우기도 했다. 군대를 전역한 후 만화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몇 달에 걸쳐 독학으로 실력을 쌓았다. 이때 습작한 것 중 괜찮은 것을 골라 신문과 잡지의 독자코너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그 중 「너구리 형제」라는 꽁트가 만화가 길창덕의 추천으로 1964년 《로맨스》에 실리며 데뷔했다. 본격적인 프로 데뷔 작품은 1965년도에 연재를 시작한 명랑만화 「카이젤 상사」로, 독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초기에는 주로 《아리랑》, 《청춘》과 같은 성인 취향의 대중잡지에 만화를 발표했다. 1968년 어린이잡지 《애국소년》 창간 데스크를 맡으면서 어린이 만화 몇 작품을 연재했고, 이를 계기로 어린이 만화로 활동 분야를 확장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년잡지의 판형이 커지고, 별책부록 출간 경쟁이 벌어졌다. 1974년 신문수는 《어깨동무》의 별책부록으로 「도깨비 감투」를 연재했으며, 1976년에는 같은 잡지에 「원시소년 똘비」를, 1979년에는 《소년중앙》에 「로봇찌빠」를 연재하며 1970~1980년대 명랑만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다시 성인만화로 작품 활동 분야의 전환을 꾀하기도 했다. 1989년 《주간경향》에 연재한 「신판 봉이 김선달」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까지 신문수의 성인만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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