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집을 낼 때까지, 내 생활은 만남의 연속이었다. 만남은 늘 내게 하나의 세계를 열어서 보여 줬다. 등단 후에 소설 세계, 봉순이를 키우면서 고양이 세계, 결혼하니 신혼의 세계, 엄마와 함께 투병의 세계…. 내가 지나는 길의 한쪽 편엔 막 건설된 세계가 둥글게 굴을 지었다. 하지만 어찌 된 판인지 책이 나온 이후로는 이별의 연속. 친정집이 있던 동네는 알아볼 수 없게 변했고, 엄마는 병원으로 갔고, 고양이들은 하나둘 죽어서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지나는 길마다 무너진 세계라서 발이 푹푹 빠진다.
두 번째 소설집 『도망자의 마을』은 이별의 세계에 지어졌다. 오직, 도망가기 위해 지어진 이 마을은 사람이 있지만 산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살아 보려고 젖은 발로도 앞을 향해 걷는 사람이 머무는 마을. 이미 무너졌으니 앞으로 무너질 일은 없는 마을이라 안심되는 마을. 나는 이 마을을 건설하면서 자꾸만 없는 것을 상상했다. 아무도 이별하지 않은 것처럼, 누구도 망가지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치며. 그렇게 거짓말로 도망 다녔다. 쓸쓸하지만 꽤 명랑한 마을이라 자부한다.
(중략)
이 책이 나온 뒤, 내 앞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그 세계의 첫 장면만큼은 온전히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