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을 매만지는 동안 내내 ‘속도’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내 소설에서 다루는 인물들(속도에 못 미치는, 혹은 속도에서 도태된)에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썩 개운치 않았다. 눈만 뜨면 각종 미디어에서 뜻도 불분명한 단어를 앞세워 속도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현실이다.
속도는 동시성과 즉각성의 흐름에 우리의 몸을 맡기게 만든다. 그래소 속도는 우리에게 사건의 중심에 살고 있는 환상을 심어주고, 현실 인식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믿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그 환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우리가 속도의 선전효과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실 인식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기억이다. 속도는 우리의 기억을 지워 없애려 혈안이고, 반드시 잊지 말아야 기억까지도 망각하라고 다그친다.
기억한다는 것은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작가란 망각을 거스르는 기억의 투쟁자이다.
기억은 소멸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