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평론집의 서문을 쓰는 일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언어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거창한 수사로 혹은 내밀한 사적 언어로 문학적 지향을 펼쳐낸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정작 쓴 문장이 첫 평론집의 서문을 쓰는 어쩌고저쩌고라니. 무능의 언어로 서문이 점철되어 평론집 전체가 폄훼될까 두렵기까지 하다. 평론이란 것이 텍스트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우리의 관계 속에서 사유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해란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보는 시각만큼 빗나가거나 억지스러운 데가 있는 것이라서 오해와 오독의 기록을 내어놓는 것이 아닐까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무의식의 층위에서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을 들여다볼 용기가 필요하다.
두 개의 장면에서 나의 평론은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서울 신사동 어느 극장에서 본 허진호 감독의 1998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오프닝 시퀀스. 주인공인 정원의 얼굴로 조금씩 다가가는 빛을 보는 순간, 저 장면을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어떤 기대로 충만했다. 빛에 담긴 환희와 그로 인한 불안이 정원의 남은 생에 미친 영향과 같은 글을 말이다. 또 다른 장면은 2003년 정이현 작가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펼쳐 “나는 레이스가 달린 팬티는 입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유리와 마주하는 때였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유리를 내모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그 순간, 이전까지 영화비평 공부에 매진했던 나는 문학평론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 시절의 나는 평론이 그저 주어진 텍스트를 해석하고 이를 설명하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둘러싼 세계로 시계를 확장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를 분열의 시간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생활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일들을 하며 겪는 세계에서 나는 내가 쓰려고 했던 언어에서의 소외를 경험해야만 했다. 그것은 세계가 요구하는 방식의 언어를 체화함으로써 내가 원하는 언어로부터 멀어져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분열의 감각을 회복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극장에 앉아 어떤 충일함을 경험했던 때로부터 이십 년이 지나 평론가로 등단할 수 있었던 것을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그 이전에 시인으로 등단한 것이 회복의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
2024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