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독자들 대부분에게 프스코프(Псков)는 낯선 곳일 것이다. 러시아 전문가들에게도 프스코프는 그리 잘 알려진 곳은 아니다. 모스크바의 크레믈린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같이 러시아를 상징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승고적이 있는 곳도 아니다. 그렇다고 우랄 지역처럼 각종 중공업과 제조업 시설이 몰려있는 지역도 아니다. 쿠르스크나 볼고그라드처럼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도 아니고, 사할린, 블라디보스토크처럼 한국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낯익은 러시아 지역도 아니다. 프스코프는 러시아 연방의 북서쪽 국경지대로서 서쪽으로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남서쪽으로는 벨라루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대표적 도시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프스코프에서 북동쪽으로 약 280km 떨어져 있다.
그럼 왜 이처럼 별 특색 없는 프스코프 지역에 대해서 알아야 하나? 한 국가의 변방에 있는 오지라도 사실 나름대로 ‘특색’ 없는 지역은 없다. 국가 전체에 대한 경제적, 산업적 기여도가 높지 않더라도 한 국가를 이루는 구성주체로서 그 지역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있다. 물론 다른 나라와 비교해 러시아는 사회, 경제적 발전 측면에서 중앙과 지방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고 거의 ‘모든 것’이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같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어 지방에 대해 잘 몰라도 러시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말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된 이후 거대한 러시아가 열리기 시작하고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화, 글로컬화, 탈경계화가 가속되면서 러시아의 지방이 바깥세상에 점점 더 노출되고 있다. 이제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만 알아서는 ‘수박 겉핥기’식 이해가 되는 날이 오고 있다. 최근 한 언론기사는 한국의 한 중소기업이 중국 지방 도시에 진출한 후 그 지방의 역사적 인물의 동상을 세움으로써 지역 사회로부터 큰 호감을 얻어 비즈니스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다. 글로벌화가 세계 여러 나라 지방으로도 확산하는 이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주의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러시아에 대해서도 이제까지 소홀히 했던 지방에 대한 이해를 제고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러시아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는 프스코프 주 공식사이트의 문구처럼 프스코프 지역은 러시아에서 몇 안 되는 천년고도 중 하나인 프스코프가 위치한 곳이다. 이 지역이 러시아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903년으로 노브고로드 지역에 러시아 최초의 국가가 성립된 것으로 알려진 862년으로부터 약 한 세대 이후이다. 이는 곧 프스코프 지역이 향후 러시아의 국가 발전과 역사, 문화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임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프스코프 지역에 대한 이해는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서도 중요하다. 이외에도 한국이 프스코프에 대해서 잘 알아두어야 하는 이유도 물론 있다. 프스코프 지역은 지정학적·지경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유럽에서 러시아로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2009년 러시아 상품의 약 1/3이 프스코프 지역을 통해서 유럽으로 수출되었다. 향후 한국 물품이 시베리아횡단철도를 거쳐 유럽으로 수출될 때 바로 이 프스코프 지역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또한, 최근 한국의 자동차 제조 및 부품 공장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에 설립된 예를 통해 보듯이 러시아와 유럽 수출의 전초 기지를 프스코프 주에 세워야 할 경우도 생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프스코프 지역의 다양한 면모와 특성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점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되었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필자가 특히 염두에 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프스코프 지역을 총체적으로 소개하면서 동시에 가능한 한 단순 편람식의 내용과 구성을 피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 프스코프 지역의 정치·경제·역사·사회·문화 등의 영역을 골고루 다루면서 동시에 각 영역에 대한 정보를 평면적으로 소개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해당 지역이 지니고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 특성, 문제점, 당면 현안 등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둘째, 프스코프 지역의 사례를 통해 러시아 연방 전체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위해 곧 프스코프 지방의 경우만 소개, 분석하지 않고 프스코프가 속한 북서연방관구 그리고 러시아 연방 전체의 사례로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이 프스코프 지역을 러시아 연방 전체 맥락 속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울러 국가 전체의 상황과 프스코프 지역의 경우를 비교고찰 할 수 있게 하여 지방의 사례와 경험이 국가 전체의 상황과 어떻게 상이하고 유사한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러시아와 같이 거대한 영토를 지니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제도를 지닌 국가를 연구할 때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고 비교하고, 지방의 사례를 통해 전체 국가의 상황을 고찰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 중앙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 같고, 국가 전체가 중앙에서 발견되는 몇몇 특성이나 경향에 의해 통일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러시아에는 두 개의 러시아가 있다. 하나는 모스크바이고 또 하나는 모스크바 밖의 러시아이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 이 말을 ‘모스크바 밖의 러시아’에서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우랄의 마그니토고르스크를 방문했을 때 만난 한 인사는 “모스크바는 러시아가 아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몇 개 대도시가 러시아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방은 모스크바와 다르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러시아 지방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에 중앙에 편중되지 않은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 줄 것이고, 둘째, 중앙의 사례를 마치 러시아 전체의 상황으로 획일화, 단순화, 일반화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지방 연구는 러시아를 더욱 깊이 그리고 정확히 이해하는 데 일조할 것이고 앞으로 우리가 러시아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적 접근을 취할 때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많은 분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본인의 전공분야 밖의 영역 집필 시에 조언을 해주고 자료를 제공해준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HK팀원들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가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이 외에도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신속하게 입수해준 한국외대 도서관 직원 여러분은 물론, 유용한 인터넷 자료를 성실하게 찾아준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의 이진실, 이창길 조교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경제 관련 단원에 대해 논평을 해준 국민대 김상원 교수님과 자진해서 선뜻 원고를 읽어준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김준석 박사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인내심을 가지고 원고의 완성을 기다려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탁경구 팀장님께 감사드린다.
이 책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HK(인문한국) 아젠다 ‘러시아 인문공간의 한국적 재구성’(KRF-2009-362-B00005)의 연구 결과물로 러시아 북서쪽 국경지역에 대한 연구이다. 이 책이 기업이나 지자체 또는, 개인이 프스코프 지역과 향후 인연을 맺고자 할 때 유용하게 사용되기를 바란다. - 머리말